2024. 07. 21., 서울 용산구 보광로59길 10 2층.

나의 가능세계에서 경험이 배제되었습니다

단순히 논문을 요약해서 발표하는 나의 모습이 성에 차지 않았나봅니다. 나에게 들이밀어진 분석적인 질문에 나는 방 한 켠에서 고꾸라질 수 있었고 어제의 음주를 탓하기만 했습니다. 숙취가 세미나를 방해하지는 아니하였으나 그 편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의 마음에 더 좋겠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휴대전화가 14시하고도 3분에 출발하는 KTX의 존재를 울려대고 있었지만 나는 침대에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고 정말로 늦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조금 전의 판단을 후회하면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짐을 싸기 시작할 때부터 택시에 탈 때까지 나는 분주했습니다. 랩탑을 챙기는 결정으로 인해 나는 3개의 가방을 챙길 수 밖에 없었고 다시 포항에 돌아올 때까지 이 선택을 후회했습니다.

2024. 07. 19.,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63길 91.

KTX-산천 244는 포항을 출발해 동대구, 대전, 오송, 천안아산, 광명을 지나 서울에 도착하는 열차입니다. 천안아산역의 플랫폼에는 윤도가 서 있을테고 전산 상으로 나의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정차역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이 한 쪽 밖에 없어서 얼굴을 결국에는 마주쳐야만하는 문학적 장치에 나는 8호차를 예매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나는 얼굴을 마주보는 것에 있어서 이상하리만치 부끄러움을 느꼈고 열차가 비로소 천안아산역에 다다랐을 때에는 굳이 랩탑을 펼쳐서 아무것도 없는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 이때만큼은 랩탑을 챙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2024. 07. 19., 충남 아산시 배방읍 희망로 100.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어떻게 알았는지 열심히 메시지를 보내댔고 나는 어색함에 텍스트로 웃음을 지어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해 가방을 선반에서 내릴 때가 되어서야 표정으로써의 웃음을 내비칠 수 있었습니다. 웃느라 구겨진 얼굴을 가리려는 손바닥 사이로 한층 빨갛게 상기된 윤도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24. 07. 19., 서울 종로구 삼봉로 71.

광화문 신라스테이의 프론트에서는 카드 키를 내어주며 새벽에 잠깐씩 냉방이 꺼질 수 있다는 점을 고지했습니다.

서울역에서 종각을 거쳐 다시 용산으로 돌아가는 동선은 장마의 습한 날씨와 겹쳐 나를 가라앉게 만들었습니다. 그 중간의 횡단보도에서 뜬금없이 녜를 마주쳤을 때에 나는 가라앉은 와중에도 소리를 질렀고 윤도도 나를 따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2024. 07. 19., 서울 용산구 새창로 209 1층. 2024. 07. 19., 서울 용산구 새창로 209 1층.

나는 윤도와 만나기 이전부터 곱창 이야기를 했고 윤도는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한담곱창으로 나를 끌고 갔습니다. 우리는 모듬 곱창에 육회를 주문했고 나는 속으로 “투명한 쪽이 광어, 쫄깃한 쪽이 우럭이었지” 되뇌었습니다. — 광장시장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소주 한 병을 혼자서 비우려고 하는 나를 윤도가 말렸습니다.

짐을 줄여야지 생각하면서도 굳이 챙겨온 화장품들이 외로워보였고 나는 그들과 조금 놀아줬습니다. 이태원역의 끝없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나의 얼굴이 윤도의 등에 부딪혔고 약간 남은 파운데이션 자국을 애써 손가락으로 밀어내며 아무일도 없었음을 연신 주장했습니다.

2024. 07. 19.,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14길 16 2층.

이스트웨스트에서 미정님은 나에게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려보이셨고 나는 신분증을 제시했습니다. 양심이 있냐는 말과 함께 카드를 제시할 것을 다시 요구받았습니다. 나 00년생이에요. 아직 그래도 어리지 않나요. 주장하고 싶었던 것들은 미정님의 호탕한 웃음과 함께 바스라졌고 결국 손에는 아구아밤과 웃음 그리고 약간의 부끄러움만이 남아있었습니다.

2024. 07. 20., 서울 용산구. 2024. 07. 20., 서울 용산구.

나는 클럽을 나서면서 이 시간에 여기에서는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며 툴툴댔지만 5분도 되지 않아 우리는 차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해가 뜰 때 잠에 들었고 11시가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2024. 07. 20., 서울 종로구 삼봉로 78.

점심에는 김치찜을 가로로 잘라서 먹는 윤도를 볼 수 있었고 나는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도도 김치를 세로로 찢고 있는 나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 서로의 우주가 충돌하는 데에는 큰 계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서울을 반바퀴 돌아야만 종각에서 잠실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40분 동안 스마트폰만 쳐다보았고 윤도도 별반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였습니다. 잠실에 도착한 것은 15시 였고 내가 상탈 30ml를 구매한 것은 15시 반이었습니다. 인터넷 면세점에 계속해서 입고되지 않던 50ml를 구매하기 위해 시내 면세점을 방문할 결심이 있었으며 30ml도 취급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을 때에는 결제를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입장을 앞두고 약간의 실랑이를 벌인 것은 교복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다소 우유부단한 모습을 내비쳤고 그 탓에 윤도는 결정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우주의 충돌이 예보되었고 우리는 서로 회피 기동을 벌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윤도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24. 07. 20.,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240.

머리띠에 달린 꼬리를 흔들어보이면서 나는 참 나잇값 하지 못하는 머리띠를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2024. 07. 20.,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240.

50분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아트란티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윤도가 자이로드롭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윤도는 상공에서 나를 보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이로스윙을 타는 줄에서 살펴본 초단기 예측은 곧이어 강우를 예상하고 있었고 우리는 실내로 미리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후렌치 레볼루션이 예약제로 바뀐 탓에 우리는 탑승할 수 없었고 그 아래의 범퍼카의 탑승을 기다릴 때 그 진동만을 느끼며 공포에 떨 수 있었습니다. 높은 습도에 땀으로 다 젖어버린 우리는 후룸라이드를 타려고 했습니다만 앞으로의 일정의 상의해서 이르게 퇴장했습니다.

2024. 07. 20.,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240.

회전목마는 퍼레이드 탓에 그 불을 꺼내렸지만 나는 그 휘도가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행의 모습이 괜찮은 형태로 만들어져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비가 쏟아졌고 가려고 했던 피자집은 마감을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우산 하나에 의존에서 성수를 떠돌았고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마감을 하지 않은 아무 식당에서 밥을 때웠고 다소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방에 돌아왔습니다.

씻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욕조에 찰박하게 물을 담아 잠깐 몸을 담궜고 나는 가까스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2024. 07. 21., 서울 용산구 보광로59길 10 2층. 2024. 07. 21., 서울 용산구 보광로59길 10 2층. 2024. 07. 21., 서울 용산구 보광로59길 10 2층. 2024. 07. 21., 서울 용산구 보광로59길 10 2층. 2024. 07. 21., 서울 용산구 보광로59길 10 2층.

이태원에서 드랙쇼를 봤습니다. 부산에 갈 때마다 볼 수 있었습니다만 모종의 사유로 보지 못하다가 오래간만에 보았지요. 나는 쇼를 보면서 이상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다소 취향 타는 쇼에 윤도를 끌고 온 것에 약간은 미안하다는 감정이 있었지만 너무나도 만족한 표정의 윤도를 보며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2024. 07. 21., 서울 용산구.

우리는 새벽 5시에 우산 하나에 의존해서 이태원에서 한남동까지 예기치 못한 산책을 즐겼고 그제서야 택시에 탈 수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일어나 체크아웃 했습니다.

윤도와 헤어졌습니다.

2024. 07. 21., 서울 중구 창경궁로 62-29.

나는 을지로에서 헤일리를 만나 우래옥에서 평양냉면을 먹었고 이 글을 미리 들려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2주나 일찍 확인해본 셈이지요— 경험을 간추려 글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입니다.

포항으로 돌아가는 열차에서는 혼자였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내 번호를 알 턱은 없겠습니다. 한없이 가까이 있음에도 우리는 전파에 의존해 감정을 나누었습니다. 나는 사실 열차가 서울역에 도착하지 않기를 희망했었습니다. 하지만 끝끝내 서로의 눈이 마주쳤고— 나의 가능세계에서 경험이 배제되었습니다.


권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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