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6. 25., 경북 포항시 남구 지곡로.

궂은 날씨에 툭 떨어져 굴러다니는 꽃송이가 하늘을 업신여기고

2024. 06. 24.,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25 2층.

티타로 출근을 감행했습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미팅과 스터디 때문에 연구실에 출근할테니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카페로 출근해야겠다는 계산에 바탕한 결과였지요. 토요일에 많은 작업을 해둔 터라 특별히 할 일은 없었습니다.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의 일꾼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프롬프트 수정하고 실험 돌리고 결과 확인하고. 프롬프트 수정하고 실험 돌리고 결과 확인하고. 다소 기계적인 작업의 연속에 나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고 샐러드를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지성의 덧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24. 06. 24., 경북 포항시 남구 지곡로.

최근들어 러닝을 할 때마다 왼쪽 발목이 아파왔고 필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은 질환이 생겼다기보다 자세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페이스를 낮춘 탓에 자세가 어그러진 것일까 생각하며 다시 이전의 속도를 되찾았고 발목은 더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나는 앞으로 천천히 뛸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일까 상상하면서 분홍신을 떠올렸고 한 켠으로 쿡쿡 웃던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말했지요. 화요일까지는 카페로 출근해야겠다는 계산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 주변 카페에 싫증을 느낀지는 꽤 오래된 편이었습니다. 커들러는 아늑하지만 사장님과 너무 친해서 할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티타는 모든 조건에 있어서 완벽하지만 너무 자주 가서 부끄러워요. 바르벳은 그냥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에스크아웃에서 썸머를 우연히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카페에 한번 자리 잡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 편인데 썸머는 찌뿌둥했나봅니다.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썸머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썸머의 집에 방문하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특별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차를 몇 잔 내려서 거실에 자리 잡았고 카페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작업들을 이어나갔지요. 나는 중간 중간 쇼파에서 뒹굴면서 스마트폰을 쳐다보기 일쑤였고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때아닌 직감에 저녁 약속을 철회하고 다급하게 뛰쳐나갔습니다. 오늘 옷을 왜 이렇게 입었지 후회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방에 들러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약간은 땀방울이 맺힌 상태로 바르벳에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러인지 입구에서 돌아 앉아 있는 재희의 앞에 앉기 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비슷한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2024. 06. 25.,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15-1.

아침을 잘못 먹었다며 술을 거부했지만 내가 너무 보챈 탓이었는지 술을 함께 마시게 되었어요. 내가 편하게 느껴진 탓인지 잘 들어준 탓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했습니다. 나는 단조로운 반응을 보이며 듣기만을 계속했습니다. 그 때 소주는 이미 네 병이 쌓여 있었고 거기에서 한 병을 더 꺼내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다시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녁에 잡아둔 동아리 뉴비 대상 세미나를 옮겨둔 채로 메세지를 남겼습니다. 오늘 저녁 같이 먹자고.

씻지도 못한 채로 아침 미팅에 참여했고 나는 다소 피곤한 목소리로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미팅이 끝나고 연구실 앞에서 선배를 마주쳤어요. 당연한 수순으로 나에게 물어봤습니다. 어제 술 마셨냐고.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꾀죄죄한 몰골로 출근한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대신 나는 주저앉아 웃었습니다.

다같이 버거킹에서 점심을 먹었고 나는 샤워를 핑계로 동기들과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마음같아서는 낮잠을 자고 싶었지만 세미나를 3시로 옮겨둔 탓에 깨끗해진 모습으로 동아리방에 나타날 의무가 있었습니다. 급하게 변경한 일정 탓에 몇 뉴비는 혼란을 겪었고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계부를 쓴 이래로 택시보다 버스를 애용하게 되면서 대도시에 비해 불합리한 포항 버스를 이겨내는 방법들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306번을 이용할 때에는 그냥 소요시간에 20분을 더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지요. 그 탓에 나는 약속시간에 15분 일찍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란나타이에 들어가며 2명임을 밝혔지만 몸은 혼자였습니다. 나는 이 상황을 잘 버티지 못하는 편이에요. 약속에 늦지 않겠다고 10분이나 일찍 온 재희가 고마웠습니다.

2024. 06. 26., 경북 포항시 남구 대이로 51 1층. 2024. 06. 26., 경북 포항시 남구 대이로 51 1층.

이전에 폭폭타이에 갔다고 했다가 헤일리가 란나타이에 가보라고 했던 기억이 있었지요. 팟타이와 볶음밥을 주문하자는 말에 나는 부족하지 않을까 속으로 걱정했습니다만 재희의 이야기들이 곁들여지니 딱 알맞은 양으로 식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나는 오래간만에 카페인이 함유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습니다. 그마저도 1/2 디카페인이었지만 밤까지 시간을 함께 보내기에는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영일대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3시간 동안 산책을 즐겼고 나는 또 다시 듣는 사람이 되어 재희를 토닥였습니다.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누면서 나의 향수를 자랑했습니다.

연구실에 LLM 스터디 그룹이 생겼습니다. 피할 수 없는 분위기에 일단 참여하긴 했는데 잘 준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첫 스터디 세션을 맞아 교수님께서 밥을 사주셨습니다만 무작위로 추첨한 당번으로 내가 선정되는 바람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2024. 06. 27.,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2번길 41 2층.

썸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제야 막 일어난 목소리로 나를 대했고 나는 썸머를 끌고 카페로 나갈 작정이었습니다. 에스크아웃에 다시 방문했어요. 썸머는 점심을 먹지 않았고 나는 아사이볼이 먹고 싶었던 탓이었습니다.

썸머는 훌륭한 러버덕이 되어주었습니다. 몇개월간 해결되지 않던 문제를 썸머에게 설명했고 나는 그 와중에 해결책을 떠올려서 구현할 수 있었어요. 토큰 부족의 한계를 해결할 임시 방편이었지만 생각보다 잘 작동하였기에 안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함께하지 못한 저녁 식사를 오늘 함께 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썸머의 집에 갔다가 학교를 갔다가 다시 러닝을 나오는 것은 꽤나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2024. 06. 27., 경북 포항시 남구 지곡로.

오늘은 약간 무리해서 실험적인 러닝을 했습니다. 천천히 뛰어서 발목이 아팠다면 빨리 뛰면 괜찮아질까라는 가설이 있었습니다. 6km를 515의 페이스로 뛰었고 발목이 아프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천천히 뛸 때의 자세가 바르지 않음을 깨달았고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목도했습니다.

2024. 06. 28., 경북 포항시 남구 대이로189번길 5-2.

병원 예약이 이동에서 두시 반인 탓에 점심에 재희를 만났습니다. 이동에 잘 나오지 않는 탓에 무엇을 먹고 어떤 카페에 가야할지 나올 때마다 걱정이 많습니다. 일단 식사는 곤지곤지에서 해결했습니다. 한식이 먹고 싶기도 했고, 이전에 랩 사람들과 다함께 방문했을때 나쁘지 않았거든요. 강된장 정식을 먹었는데 재희도 썩 만족한 눈치였습니다.

그럼에도 병원 예약 시간까지는 시간이 꽤나 남았던 탓에 근처 카페에 방문했습니다. 아직은 내가 말하기에 부끄러움이 많았는지 나는 또 듣는 자세에 치중했습니다. 병원 예약 시간이 다 되도록 재희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나는 리액션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는 저녁에 다시 볼 것을 기약하면서 헤어졌어요.

2024. 06. 28., 경북 포항시 남구 효성로64번길 5 1층.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저녁에 토산전집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비가 오는 탓에 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좋겠다 싶었는데 비는 전혀 오지 않았고 습한 공기만이 쨍쨍했습니다. 토산전집을 늘 4명에서 방문한 탓에 2명에서 방문하면 어떻게 주문해야하는지 몰랐어요. 직원분께 우리는 모듬전을 추천받을 수 있었고 양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또 전을 먹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다음으로는 펀앤펀으로 이동했습니다. 어쩐지 이전에 랩 사람들과 술을 마신 루트와 동일한데 기분탓입니다. SK뷰 앞에서 내가 가장 무난하게 좋아하는 루트거든요. 배가 부르기도 했고 크게 돈을 많이 쓰고 싶지는 않았기에 기본으로 나오는 감자튀김만 둔 채로 맥주와 소주를 마셨습니다.

화요일과 다르게 둘 다 많이 취하지 않은 상태로 술자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우리는 강변을 거닐었습니다.

새벽 늦게 방에 들어온 탓에 늦잠을 자기에는 충분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점심이 지나고서야 눈을 뜰 수 있었고 이대로 방에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4. 06. 29.,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32.

소설 ‘파과’를 챙겨서 달팽이책방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신경쓰일 정도로 내리고 있었고 나는 위아래로 흰색 옷을 챙겨 입은 것에 후회했습니다. 평소보다 어두운 분위기의 책방에서 파과를 읽어나갔고 그 줄거리는 날씨가 만들어내는 잿빛의 분위기에 다소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책의 중간 쯤 다다랐을 때 한 무리가 책방에 들어와서 수다를 나누기 시작했고 나는 흐트러진 집중력에 책방에서 탈출해서 헤일리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헤일리가 나에게 연락했어요. 남은 배달음식을 같이 먹어달라고. 찜닭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헤일리의 집으로 향했고 맥주 몇 캔과 함께 남은 찜닭을 해치웠습니다.

심슨 시즌 1은 정말로 재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달팽이책방에 다시 방문했습니다. 3시에 재희와 함께 방문했어요. 나는 파과를 마저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재희에게는 ‘1차원이 되고 싶어’를 빌려주었습니다. 원인은 잘 모르겠으나 나는 파과에 잘 몰입할 수 없었고 페이지를 그저 넘기다가 결말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약간 지루해보이는 눈빛의 나와 달리 재희는 소설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추천해준 책을 마음에 들어해서 다행이었습니다.

2024. 06. 30.,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2번길 3 1층.

저녁으로 나는 쌀국수와 초밥을 제안했고 재희는 초밥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이 아닌데 재희와 함께 밥을 먹으면 이상하리만치 밥을 천천히 먹게 됩니다. 말하는 쪽이 재희인데도 말이지요. 내가 볼때 나의 모습이 평소같지 않았습니다.

재희와 손을 잡고 철길숲을 산책하는 와중에 퇴근하는 책방지기님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다소 부끄러운 감정이 피어올랐습니다.

방에 되돌아왔을 때에는 새벽 1시였습니다.

2024. 06. 30.,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2번길 27 1층.

꽃도 하늘을 업신여기는데

2024. 06. 25., 경북 포항시 남구 지곡로.

오고 가며 능소화를 보았습니다. 이 덥고 습한 날씨가 우습다는듯이 주황빛 꽃잎을 뽐내는 자태는 예쁘다는 감각을 넘어 멋있다는 말이 어울리겠습니다.

궂은 날씨에 툭 떨어져 굴러다니는 꽃송이가 오히려 하늘을 업신여기고— 나는 원인 모를 무력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권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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