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를 오래간만에 마신 나는 이게 원래 이렇게 달았나 고민했습니다
月
오래간만의 출근이었지만 연구실에 오래 있지는 못했습니다. 헤일리는 반년 만에 포항에 다시 자리를 잡았고 오래간만이라는 핑계로 학생증을 받으러 오는 헤일리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연구실과 총무팀의 자리가 가까운 탓도 있었겠지요. 대학 본관에서 학생회관에 있는 은행을 찍고 제2공학관으로 가는 최고로 비효율적인 동선 사이에서 나는 오늘 ‘인사이드 아웃2’를 볼 것을 제안했고 헤일리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저녁을 먹기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티타에 들렀습니다. 젤라또를 먹으면서 이번에 만든 플러스 뉴비 세미나 자료를 자랑했어요. 지금까지 코딩을 하면서 깨달은 부분들을 모두 모아서 ‘Clean Code’라고 이름 붙였지요. 플러스에서 뉴비 대상 세미나를 몇 년 간 하면서 처음 해보는 주제라 헤일리를 앞에 두고 연습 겸 초견을 했습니다.
저녁으로는 카레라멘을 먹었습니다. 옮기기 귀찮은 탓에 티타에서 파스타를 먹을까 생각하다가 저번주에 헤일리가 카레라멘이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거든요. 친한 사장님이 오늘 가게를 맡지 않으셔서 약간 실망했지만 맛은 여전히 괜찮았습니다. 나 또한 카레를 좋아해요. 크게 질리지 않는 향기인 것 같습니다.
뉴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첫 세미나인데 늦을까봐 노심초사하면서 학교로 출발했습니다. 동아리방에는 늦지 않게 도착했습니다만 세팅을 하는데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3분 정도 늦게 되었습니다.
처음 다루는 주제였지만 크게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큰 지식이 필요하다기 보다 지금까지 내가 느낀 것 위주의 내용이었기 때문에 준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도 괜찮았거든요. 직관적으로 느낀 부분들 위주다보니 뉴비들의 몇몇 질문에 대해서는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온갖 창의력을 구사하는 것이 필요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크게 문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세미나를 급히 끝낸 이후로는 영화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한 레이스를 시작했습니다. 동아리방에 나를 제외한 올드비들이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뉴비들을 버리고 도망갈 수 밖에 없었어요. 미안합니다. 버스정류장에는 내가 먼저 도착했고 늦지 않을 마지막 버스가 지나가려는 찰나에 헤일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버스 3초만 잡아달라고. 나 그런거 잘 못한다는 눈빛으로 버스 기사님을 독대하는 사이에 헤일리가 도착했고 버스 문은 굳게 닫혀 버렸습니다. 우리는 다시 기사님께 눈빛을 보냈고 기사님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팝콘을 샀습니다. 요 근래 영화관에 항상 혼자 간 나에게는 다소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2’의 러닝타임 절반을 울음과 함께 보냈습니다. 나의 부끄러운 일들이 생각나서 수치스러우면서도— 디즈니 특유의 감정을 건드리는 장치들이 나의 마음에서 잘 작동했습니다. 다소 예측 가능한 스토리지만 각 캐릭터들에게 이전 편에 비해서 더 다이나믹을 부여하고자 노력한 점이 두드러졌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노래방에 들렀고 복숭A에 들렀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난 헤일리와는 나눌 일이 정말 많았거든요.
火
종소세 환급액이 들어왔다는 기분 좋은 알림톡과 함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만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방에 늦게 들어온 탓에 몸을 쉽사리 일으킬 수 없었어요. 점심을 포기해서 침대에서의 시간을 늘리고 1시 미팅에 늦지 않는 쪽을 택했습니다.
1시에는 포준위 홍보팀장을 만나서 미궁 관련 미팅을 가졌습니다. 홍보팀장님이 일을 깔끔하게 참 잘하시는 것 같아요. 요청한 사항들을 깔끔하게 준비해오고 논의가 필요한 사항들을 잘 정리해주십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답답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참 다행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작업한 미궁 프로토타입을 선보였고 팀장님은 흡족한 반응을 내보였어요. 멈췄어야 했는데 그 이후로 내 자랑을 늘어놓은 점이 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연구실에 출근해서는 프로젝트를 손봤습니다. 지금껏 쓰던 벤치마크와 다른 종류의 벤치마크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문제를 수정했습니다. 또, 바뀐 포맷 위에서 돌아갈 수 있도록 코드를 수정했습니다. — 에러 로그가 출력되는데 엔드 투 엔드로 실행되는 이상한 상태가 되었지만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곧바로 코드를 푸시했습니다.
리스트 식당에서 내 인생 최악의 우동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소스를 잘못 부었나 싶을 정도로 감칠맛과 간이 너무 강했어요. 별개로 김치볶음밥은 맛있었습니다.
러닝을 하러 나가는 길에 핫보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내용과 별개로 약간의 고민을 했습니다. 전화를 끊을지, 전화를 하면서 러닝을 할지. 몇 초의 생각 이후에 나는 전화를 하면서 러닝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중강도로 러닝을 할 작정이었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대화 내용의 절반을 잃어버린 것만 빼면 말이죠.
원래 6km를 뛸 작정이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발목이 너무나도 아팠어요. 러닝화를 새로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핫보이는 사이다를 살 것을 제안했고, 사이다를 오래간만에 마신 나는 이게 원래 이렇게 달았나 고민했습니다.
水
어젯밤에 슬라이드를 준비하길 잘했습니다. 저번주 미팅에서 교수님께서 슬라이드를 만드는 연습도 할 겸 앞으로는 장표를 가지고 미팅을 하자고 하셨던 것이 어젯밤에서야 기억났거든요. 다른 동기들도 용케 기억하고 슬라이드로 준비해와서 다행이었습니다.
오늘따라 미팅이 길어졌고 학식을 먹기에 시간이 늦어져서 나가서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는 꽤나 무지성하게 가정초밥을 제시했고 그에 대해 선배는 ‘전가’를 제시했어요. 초밥이 나의 취향에는 잘 맞지 않았지만 점심 특선의 가성비가 좋았기에 만족스러웠습니다.
어제 미궁 미팅에서 나온 부분들을 추가적으로 구현했습니다. 이번주 이후로는 정말 미궁 구현에 적어도 한 달간은 신경을 쓰지 않을 작정이었거든요. 힌트 버튼을 만들고 시트가 생성되는 애니메이션을 적용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아서 꽤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지만 결과물은 만족스러웠어요. 리드미를 작성하면서 프로젝트에 체크포인트를 찍었습니다.
오늘 밤에는 뉴비들을 대상으로 웹 101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지금까지 같은 내용을 가지고 3년 동안이나 한 터라 따로 준비를 할 필요는 없었어요. 다만 1시간 안에 끝마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임했습니다. 꽤나 긴 분량 덕분에 세미나 러닝타임이 길어져서 관중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였거든요.
호카 아라히와 젤 카야노 중에 무엇을 살 지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결국 아라히를 구매했습니다. 호카를 한번 신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木
다시 생각해보니 젤 카야노가 더 예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호카 쪽에 주문 취소를 넣었는데 이미 발송했다는 이유로 취소를 반려당했습니다. 그냥 이 참에 호카를 신어보기로 다시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연구실 신입 맞이 회식이 있었던 날이었기에 평소에 비해 조금 더 산뜻한 옷을 골라서 핫보이에게 검사를 받았습니다. 합격점을 받았어요. 덕분에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회식을 앞두고 나는 또다시 폭탄목걸이 해체 쇼를 감행했습니다. 당장 내일 있을 세미나를 앞두고 42쪽짜리 페이퍼에 대한 세미나를 준비했었거야 했거든요.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면 사실입니다. 저번 연구실 술자리 약속도 제 세미나 전날이었거든요. 한숨을 쉴 시간 조차 아껴가며 슬라이드를 준비했고 다행히도 5시에 슬리이드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식당 후보를 골랐고 나는 이더리움 블록 넘버에 기반한 랜덤으로 식당을 골라주었습니다. 후에 와장이 그걸 보더니 블록 해시로 하지 그랬냐며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제주이도’에서 식사를 하고 ‘알찬해물’에서 2차를 가졌습니다. 예상보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게 되었고 나는 기억을 일부분 잃었습니다만 레이블-라벨 사건 만큼은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金
동기의 전화와 함께 눈을 떴을 때에는 11시였습니다. 처음 눈 뜬 것은 10시 반이었으나 씻기를 포기하고 15분만 더 잘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고 나는 룸메이트를 옆에 둔 채로 세미나를 온라인으로 감행해야 했습니다. 울렁이는 속과 깨질듯한 머리 때문에 교수님의 질문들에 제대로 대답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동기에게 전화가 왔어요. 같이 국밥을 먹으러 가자는 내용이었고 나는 어렴풋이 전날 같이 점심에 해장하자고 약속했던 내용이 기억났습니다. 기숙사 앞으로 5분 뒤면 도착한다는 이야기에 나는 다급히 옷을 입고 방을 나서서 신입 분의 차에 올라탔습니다.
조방국밥에 갔습니다. 국밥을 먹으면서 동기 분이 그 이야기를 했어요. 교수님이 오늘 민재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거라고. 내가 생각해도 정말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5시에는 헤일리를 만났습니다. 같이 필라테스 상담을 받으러 가기로 했거든요. 나름 큰 용기를 가지고 상담까지 하러 갔지만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룹 수업에서는 남자를 받지 않는대요. 나와 헤일리는 둘 다 당황했고 나는 조금 억울했습니다
土
이제는 정말로 연구를 해야할 때임을 깨닫고 미뤄둔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구현이 귀찮다는 이유로 근 한 달간 미뤄둔 전략을 구현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썩 좋게 나오지 않아서 한 편으로는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개선점을 만들어야했기 때문에 다른 전략들을 구현했고 나는 그나마 개선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실험을 돌려놓고 핫보이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출국을 앞두고 밤을 새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졸려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전화를 하면서 코딩을 한 탓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많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러닝 끝나면 깨워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잠시나마 잘 수 있게 해줬어요. 많은 사람들이 아라히를 두고 몇 번 뛰면서 길들여야 좋아진다는 말을 하던 것을 한번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치 쪽이 생각보다 딱딱하고 앞볼이 잘 맞지 않더군요. 두 세번 뛰면 나아질 것 같습니다.
연태고량을 사서 동아리방에 도착했을 때에는 부우가 Google CTF를 뛰고 있었습니다. 별로 뛸 생각이 없었는데 옆에서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몇 개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한 문제 숟가락 얹어서 풀고 다른 문제들을 살펴보다가 새벽 4시에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권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