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 묶인 생각이 매질에 갇혀서
月
음주의 여파는 언제나 늦잠으로 이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2시 미팅에 늦을 만큼 늦게 일어난 것은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요. 교수님께서 이번주 랩 미팅을 취소하고 대신 각자 개인 미팅으로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수요일쯤에나 미팅을 가지려고 했는데 프로젝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탓에 월요일 미팅을 제안했습니다. 프로젝트의 상황에 맞춰서 우선순위를 조정했습니다. 더불어서 페이퍼 이야기도 조금 했어요. 교수님께서 나와 페이퍼를 쓸 생각이 있다는 생각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늦게나마 점심을 챙겼습니다. 버거킹을 갈까 생각했는데 비틀어서 퀴즈노스에 방문했어요. 에그햄 브리오슈를 주문했습니다. 생긴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굶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조금 더 챙겨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아리방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아니 사실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장 내일이 당장 시험인데 텅 빈 머리에 영 들어오지 않는 감촉이 답답했습니다. 영혼 없이 슬라이드를 넘기는 나에게 컬그가 학식 오픈런을 제안했고 나는 동승했습니다.
동아리방에서 영혼 없는 공부를 이어나갔습니다. 잠깐 동아리방에 방문한 와장에게 기출을 갈취했고 나는 덕분에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火
씻기보다 잠을 더 자는 편을 택했습니다. 딥러닝 수업을 듣기보다 시험 공부를 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사실 시험 공부라고 하기 보다 이제는 풀이를 외우는 수준에 가까웠지만요. 하지만 당장 시험까지 1시간을 앞둔 상태라면 풀이를 외우는 쪽이 훨씬 효율적일 것임을 모두가 공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시험이 끝났다는 DM에 핫보이는 곧바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릴 수 있었습니다.
3시에는 지영이를 만났습니다. 포항에 잠깐 온다는 스토리에 나는 답장을 남겼고 우리는 덕분에 만날 수 있었어요. 지난 학기에 오며가며 인사를 나눈 것을 제외한다면 만나서 긴 대화를 나눈 것은 거의 2년만 인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대화를 나눴음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거 나 혼자 느낀거면 안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대화의 주제가 변해감을 실감합니다. 요즘은 친구들과 만나면 경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축부터 연금까지 다양한 상품에 대해 토론을 나눴습니다.
저녁 약속이 있는 지영이를 먼저 보내주고 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딥러닝 팀 프로젝트 최종 보고서가 오늘 마감이었거든요. 팀원이 최종 보고서 초안을 워드로 작성한 탓에 레이텍으로 옮기는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피규어를 새로 뽑고 레퍼런스 태깅도 했어요. 번호 달고 레퍼런스 매기는 작업이 생각보다 성가시더라고요. 겨우 4페이지 작업하면서도 쩔쩔 매는데 페이퍼를 쓸 때에는 얼마나 귀찮을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때마침 스트포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스트포트 연구실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나를 본 것인지 참. 우리는 열띤 토론 끝에 토스트를 동아리방에 포장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덕분에 효자로 다시 돌아가야했고— 후회할만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토스트가 맛있었거든요.
동아리방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서 최종 보고서를 검수했습니다. 스트포트가 영어 문장을 다듬을 때마다 참 영어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단어나 표현을 쓸 때마다 나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음을 인식합니다.
시험도 끝났겠다 치킨을 주문해놓고 스트포트와 히오스를 즐겼습니다. 오래간만에 한 난투는 생각보다 재밌었습니다.
술에 조금 많이 취한 채로 핫보이와 전화 통화를 나눴습니다. 학생회관 옥상에서요. 얼굴 한번 보지 못했음에도 많이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떨어져나간 정신을 붙잡고 짐을 쌌습니다. 부산에 갈 준비를 했습니다.
水
일찍 일어났으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잠을 조금 더 즐겼어요. 캐리어가 무거운 탓에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갈 생각은 없었거든요. 가볍게 샤워를 하고 택시를 탔습니다. 어제 미리 짐을 싸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젝트가 급한 탓에 버스에서 코딩을 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노트북을 꺼내는 행위부터가 귀찮았어요. 그냥 웹툰이나 주구장창 봤습니다.
이전에도 글으로 밝힌 적이 있습니다만 나는 육교에 걸린 자물쇠를 보면서 집에 도착했음을 인식합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걸려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15년은 넘었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간 이상합니다. 이전보다 더 높은 곳으로 자물쇠가 옮겨간 것 같아요. 약간을 어색함을 뒤로 나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엄마가 떡볶이를 해두었습니다. 사먹는 떡볶이들보다 나는 집 떡볶이를 훨씬 맛있다고 인식합니다. 근 이십년동안 미뢰가 길들여진 탓인가보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면제를 탔나봐요— 잠에 들어버렸습니다. 코딩이 급함을 알면서도.
잠에서 깬 것은 아빠의 전화 때문이었습니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리면서 필요한 것은 없냐고 물어봤어요. 딱히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1시간 뒤에 마트에 도착해있었습니다. 이럴거면 일찍 가자고 하지 아빠가 툴툴거렸습니다. 처음에는 제로콜라만 사려고 했습니다만 우리는 막걸리와 먹태도 외롭지 않게 만들어줬습니다.
간단한 술자리를 끝내고 코딩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의 속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어요. 의욕이 있을 때 작업을 하면 효율이 미친듯이 좋아지는 나의 특성이요.
木
핫보이의 전화로 잠에서 깼습니다. 핫보이는 나에게 신세한탄을 늘어놓았고 나는 늦은 점심 밥과 함께 우걱우걱 씹어서 삼켰어요. 엄마가 끓여놓은 청국장이 꽤나 얼큰했습니다.
잠깐 누워있다가 작업의 시급함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집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습니다. 1층에서 나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금방 넘겨버렸습니다. 별 일 아닐테지요.
작업해야할 볼륨이 꽤 크다고 예상한 탓에 걱정하고 있었는데 꾸준히 작업했더니 늦은 오후께에 어찌저찌 완성되더라고요. 한 이틀은 걸리겠구나 생각하면서 밤을 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과거의 내가 생각보다 잘 짜두었음에 감사하며 저녁을 먹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었어요. 앞다리살과 목살 중에 목살을 먼저 구울 걸 그랬습니다. 앞다리살로 배가 찰 줄은 몰랐거든요.
金
엄마에게 8시에 아침을 먹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9시에 미팅이 있었던 탓에 일찍 일어날 필요성이 있었거든요. 엄마는 샌드위치를 준비해주었고 나는 반쯤 눈을 감은 채로 하관만을 움직였습니다.
미팅을 하면서는 나는 약간의 소외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프로젝트에서 정말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구나를 여실히 느끼며 약간의 비참함을 맛봤습니다.
미팅이 끝나고서는 턴테이블을 셋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번에 본가에 내려가면 턴테이블을 셋업해야겠다는 생각이 저번주부터 있었어요. 남는 스피커가 생겨서 단순히 연결만 하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세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첫째, 턴테이블의 출력이 RCA 단자인 것. 둘째, 스피커의 입력이 RCA 단자인 것. 셋째, 우리 집에 RCA-RCA 케이블이 없다는 것. 집안의 모든 물건을 찾을 수 있는 엄마를 대동하고도 RCA 케이블을 찾지 못했으니 나는 절망했습니다. RCA-3.5 케이블은 있는데 RCA-RCA 케이블이 없다니.
RCA-RCA 케이블을 사야겠거니 생각하던 찰나에 나는 추가적인 가능성을 검토했습니다. 이 턴테이블에는 출력 단자가 하나 더 있거든요. USB로 소리를 뽑을 수 있는 기능이 있어요. 나는 다시 집안을 뒤집은 끝에 Type B에서 Type A로 가는 케이블을 찾을 수 있었고 Type A를 Type C로 보내는 젠더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맥북은 정상적으로 턴테이블을 인식했고 나는 바이닐에 기록된 소리를 읽을 수 있었어요. 오래간만에 읽어본 바이닐의 노이즈에 나는 약간 들떴습니다.
그럼에도 RCA-RCA 케이블은 주문했습니다. 언제까지고 컴퓨터를 통해서 소리를 들을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화상으로 세미나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나는 꽤나 여유롭게 누워있었습니다. 2시 반 약속이니까 1시부터 준비해서 2시에 출발할 심산이었어요. 마침 친구에게서 어제 2시간 반 밖에 자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나는 약속이 저녁으로 미뤄지겠거니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오히려 약속을 2시로 당길 것을 제안했어요. 교수님이 수업을 일찍 끝냈다면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할 것이라 약속하며 서둘렀지만 시간이 나를 허락하진 않았습니다. 우리는 결국 2시 반에 만나게 되었어요.
우리는 서면에서 만났습니다. 웬일로 멀리 안나가고 서면에서 만나냐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멀리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근처의 대형 카페에 들어가서 오늘의 동선을 계획했습니다. 별개로 나는 대형 카페의 베이커리에 대한 불신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옷 구경을 했습니다. 요즘 내가 옷이 사고 싶었거든요. 편집샵을 한 4군데 정도 둘러보고 자라와 롯백을 가는 동선이었습니다. 코듀로이 소재의 반바지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소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구매하고 생각해봐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녁으로는 양꼬치를 먹었습니다. 양꼬치를 처음 먹어보는 탓에 뚝딱거리는 친구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습니다. 그치만 꼬치를 홈에 맞춰서 꽂아야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본능적으로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밤에는 자주 가는 칵테일바를 갔어요. 마가리타를 시키는 나에게 사장님은 얼음을 넣을지 말지 물어보셨습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넣어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약간의 핀잔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얼음 갈기 귀찮은데 너라서 넣어줬다고. 사장님과 친해지니까 이런 농담도 주고 받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사장님과만 친해진게 아니에요. 대만에서 온 손님과도 친해졌습니다. 꽤나 도수 센 칵테일들과 사장님이 주시는 데낄라를 마시다보니 꽤나 취한 상태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같이 담배를 피고 있더라고요. 평소에 피지도 않으면서 말 나눠보고 싶어서 그랬나봅니다. 대만에서 온 친구가 얼그레이 맛 담배라면서 나에게 자랑했지만 나는 켁켁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土
낮에는 잠만 잤어요. 밤에는 산책을 나섰습니다. 약간의 비가 내리는 사이로 핫보이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핫보이도 꽤나 술을 많이 마셨었나봐요. 아침인데도 채 깨지 못한 텐션으로 나를 대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맥주 세 캔을 샀고 유튜브를 보면서 잠에 들었습니다.
언어에 묶인 생각이 매질에 갇혀서
생각을 하는 과정은 내가 알고 있는 단어 더미를 쌓아 올리는 모양을 닮았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내가 아는 구조와 더미들로 나를 제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은 언어에 묶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묶인 생각이 다시 한번 매질에 갇힘을 느낍니다. 시간조차 어긋난 대화가 증가할수록 더욱 통감합니다. 잘 듣지 못했다며 서로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절차가 나의 마음을 제한합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방법은 없을까요.
권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