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5. 21.,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한 조각의 마음이 언제까지고 남아 있으리라는 걸 아는 것

수강신청을 해야한다는 뜻은 학기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학기 막바지에 다음 학기 수강신청을 해야한다니 참으로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이상한 자만감이 들어서 전공 과목을 3개 넣어두었어요. 하나 정도는 드랍할 심산으로 3개를 신청한 것이긴 하나 약간은 후회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연구실에 오래간만에 출근했습니다. 출근이 오래간만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그동안 물리적으로 다른 곳에 출근을 한 것일 뿐. 효자의 여러 카페 사장님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다니고 있다고 말하면 되려나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도커 엔진과 이미지가 포함된 도커 컨테이너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어요. Docker-in-Docker를 정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모로 생각해봐도 이것 밖에는 답이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docker:dind 이미지를 이용하면 가볍게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주말 안에 세팅을 완료해두겠다고 선언을 해둔 상태였어요. 하지만 docker:dind는 내가 원하는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나는 micro VM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알아본 것은 sysbox 였습니다만 프로젝트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 도망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패키지 지원을 하지 않는 탓에 소스에서 직접 빌드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2년간 업데이트 되지 않은 탓에 내가 링크부터 하나 하나 수정해야하는 빌드 스크립트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쓸게 되지 못한다는 결론을 가지고 다른 해결책으로 돌아섰어요.

다음으로 생각해본 선택지들은 micro VM이었습니다. LXD, Firecracker 그리고 Flintlock. 다양하게도 시도해보았습니다. 모두 다 인스턴스를 띄우는 데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지요. 다만 인스턴스에 인터넷을 연결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쓰라렸습니다. Tap 디바이스를 이용해서 연결하면 된다는데 왜 나만 안되는걸까요. 몇 시간을 씨름하다가 이 방법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docker:dind로 돌아왔습니다. docker:dind에 이미지가 persist 되지 않는 원인이 볼륨 설정 때문인 것을 깨달았어요. 부모 도커 파일을 직접 잡아다가 볼륨을 설정하는 부분들을 모두 지웠습니다. 빌드하고 커밋하니 원하는대로 이미지가 생성되었어요. 볼륨을 설정하는 한줄을 보지 못해서 3일을 날리다니. 오늘도 멍청 비용을 낭낭하게 지불했습니다.

저녁을 먹고서는 동아리방에서 열심히 실험을 돌렸습니다. 학기 말을 앞두고 약간 따뜻해진 발등이 이제는 정말로 뭔가 데이터를 뽑아야한다고 말해주고 있었어요. 금방 밤 12시가 되었습니다.

2024. 05. 20.,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2024. 05. 21.,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내가 자는 사이에 도착해있는 슬랙 메시지들을 보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협업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도커 이미지 작업해둔 부분에 대한 문의였어요. 링크를 보내주었더라고요. 이 경고문 읽어보았냐고. 원래 있는거랑 다른거냐고. 확인해보고 답장을 주겠다고 말을 해두었습니다만 미안 그거 나도 잘 몰라요. 그런 문서는 오늘 처음 봤단 말입니다.

2024. 05. 21.,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25 2층.

요즘 티타에 자주 방문합니다. 사장님과 내적 친밀감이 꽤 많이 높아졌어요. 근데 그거 나 혼자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카드를 내밀고 결제할 때마다 사장님께서도 친근함의 눈빛을 보내주시거든요. 서로 내적 친밀감만 높은 이 상황 어쩐지 정말 어색합니다.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서비스로 내어주신 빵이 약간의 친밀함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발등에 용암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일요일까지 발표 자료를 준비해야하는데 비해서 실험 데이터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열심히 발버둥을 쳤습니다. 어제 나온 데이터를 정리했어요. 리팩토링도 했어요. GPU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한 스크립트도 준비했습니다. 덕분에 쉴 틈이 없었어요. 내일쯤 데이터가 나오려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녁을 먹기 전에 데이터가 모두 나온 탓에 그것까지 정리한 후에야 밥을 먹으러 갈 수 있었습니다.

2024. 05. 21.,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쩡원, 썸머와 함께 베라보에 방문했습니다. 이번주 특선은 ‘곰라멘’이었습니다. 거대곰탕이라는 식당과 함께 준비했다고 합니다. 나는 처음 들어본 식당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물이 너무나도 맛있었거든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국물도 정말 맛있었지만 후에 계란 노른자를 풀었을 때 혀에 감기는 맛이 감동적이었습니다.

2024. 05. 21.,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식사를 마치고 떠나려고 할 때 였습니다. 사장님께서 챙겨줄게 있다면서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시더니 굴을 한 무더기 챙겨주셨어요. 저번 카이라멘 특선을 하고 남은 굴인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내일 굴 파스타를 해먹기로 약속했어요.

윉 카페에서 타로를 봤습니다. 곱도리탕에 이어서 타로까지 봐주는 카페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나는 여러 질문을 퍼부었고 꽤나 부정적인 대답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24. 05. 22., 경북 포항시 남구.

아침 미팅이 끝나는대로 윉 카페로 달려갔습니다. 굴을 처리해야하는 의무가 있었지요. 내가 도착하는대로 썸머는 요리를 시작했고 굴 파스타가 금방 완성되었습니다. 크게 기교를 부리지 않았음에도 정말 많은 굴 덕분에 맛있는 파스타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카페에 오래 눌러 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2시에 팀플 미팅이 있었거든요. 나는 스트포트에게 플롯을 재촉했습니다. 지금까지 데이터는 한껏 모아두고 시각화를 해보지는 않았기에 꽤나 불안했어요. 이유 없는 불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몇 분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데이터는 아무것도 보여주고 있지 않았어요. 잠깐 절망했습니다. 곧이어 실험을 완전히 다시 설계했고요. 오늘 중으로 다시 데이터를 뽑아보는 것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을 하기 위해서 동아리방으로 향했습니다만 작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신입생 면접을 보는 날이었지만 동아리방이 꽤나 더러웠어요. 나는 청소를 감행했습니다. 쓸고 닦기만 한 것이 아니에요. 4년 동안 박혀있었던 박스를 정리했어요. 언제가 마지막 청소였을지 모를 복도도 청소했습니다. 선도 모두 정리해서 리빙 박스에 넣어버렸어요. 동아리방에 있었던 후배들 덕분에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2024. 05. 2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동아리 신입생 면접을 봤습니다. 예전에 한창 학생 활동을 많이 할 때에는 면접관 역할을 곧잘 해낸 것 같은데 오늘은 잘 해내지 못했어요. 감정이 왜이렇게 이성보다 앞서는지 모르겠습니다. 날카로운 말들을 에둘러서 말하려는 시도에 결국 남는 건 감정 뿐이었습니다.

오늘은 딥러닝 퀴즈를 정말로 볼 줄 알았어요. 3번 내리 휴강하고 가지는 첫 오프라인 수업이기에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퀴즈를 보지 않았고 나는 심심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어요. 어젯밤에 퀴즈 공부를 하다가 포기했었거든요. 정말 다행이다.

딥러닝 수업 시간에 수업은 듣지 아니하고 팀플 실험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꽤나 희망적인 결과를 몇 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번째 실험은 레이스 컨디션 덕분에 잘못 기록되어서 다시 돌렸어야했지만요. 수업을 안 듣고 뭐하는 짓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같은 과목 작업이니 괜찮지 않을까요.

빨래를 돌려놓고 낮잠을 잤습니다. 잠깐 일어나서 건조기를 돌렸어요. 그리고 또 낮잠을 잤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건조가 완료되었고 나는 동아리방으로 출근을 감행했어요. 초록색으로 질린 데스크탑 한 대가 나를 환영했습니다. 설마 나 때문에 고장이 난 것인가 싶어서 걱정했습니다.

2024. 05. 23.,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34-1 1층.

저녁에는 후배 한 명을 만났어요. 학기 초에 오픈 세미나 할 때 세미나를 들었던 후배인데 개인적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을 최근에 받았거든요. 거절하지 않고 한술 더 떠서 식사 약속을 잡았습니다. 나의 경험담과 조언을 조금 남겨주었는데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시 잠에 들었어요.

새벽 4시도 미라클 모닝으로 쳐주나요. 하루종일 잠만 잤기에 새벽에 깨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탓에 심심한 찰나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핫보이가 채워줬어요.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약을 먹고 다시 잠에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잠에 들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지금 잠에 들지 않으면 금요일이 망한다는 생각으로.

본디 랩 세미나 시간이었으나 갑작스럽게 변경되었습니다. 논문 제출을 마무리하느라 동기가 세미나를 채 준비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대신 각자가 최근에 살펴보고 있는 논문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흥미롭게 보던게 하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학식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으나 예약 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일찍 도착한 탓에 약간의 방황을 즐겼습니다. 처음에는 스태리 커피에서 시간을 때우려고 했습니다만 창문으로 언뜻 보기에 사람이 너무 많아 보여서 포기했습니다. 스타벅스에는 자리가 많던데 말이죠. 잠깐 앉아서 밀린 일기를 작성하고 가계부를 정리하니 딱 예약 시간이 되어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2024. 05. 24.,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25 2층. 2024. 05. 24.,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25 2층.

티타로 출근했습니다만 눈도장을 찍은 것 이외에는 큰 수확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코딩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작업 가능한 분량이 정해지는 편인데 이 규칙을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규칙을 구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요. 어차피 하지도 못할 거 일은 때려치우고 티타에서 저녁 식사를 즐겼습니다.

2024. 05. 24.,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2024. 05. 24.,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러닝을 하고 태우를 만나 통나무집에 갔습니다. 태우 생일이었거든요. 이런거 핑계로 또 한 잔씩 마셔줘야하지 않겠습니까. 통나무집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리모델링을 한 이후로 깔끔한 노상 자리가 생겨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날씨도 선선해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 탓에 과음을 하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핫보이의 전화 덕분에 잠에서 깰 수 있었습니다. 머리가 꽤나 깨질 것 같았지만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요즘은 핫보이가 한국에 오면 같이 할 일을 정하는게 주된 대화 내용이에요. 롯데월드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같이 갈 생각에 벌써부터 한껏 기대 중입니다. 교복도 입자고 하는데 그건 약간 걱정이에요. 직장인처럼 보일까봐.

2024. 05. 25.,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18 1층 101호.

커들러와 티타 중에서 고민하다 커들러에 방문했습니다. 괜찮은 선택이었어요. 사장님과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었거든요. 결제하는 와중에 사장님께서 오늘 할 일 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급한 일은 없다고 대답했고 사장님께서는 보드게임을 같이 하자고 제안해주셨어요. 루미큐브와 스플랜더를 했습니다. 루비큐브는 손쉽게 이겼지만 스플랜더는 한 판도 이기지 못했어요. 역시 나는 스플랜더가 쥐약입니다.

베라보에서 곰라멘이나 한번 더 먹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7시에 미팅이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어쩌다보니 팀에서 개발 총괄 같은 자리를 맡게 되었어요. 미팅을 하면서 리포지토리를 셋업하고 개발 가이드라인을 작성했습ㄴ다. 가이드라인을 꽤나 높은 기준으로 작성하였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피드백이 없어서 불안할 따름입니다.

예시 코드도 추가할 겸 기존에 있던 코드를 새 리포지토리로 import 하는 작업을 수행했고 시간은 밤 11시였습니다.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2024. 05. 21.,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평이한 일상에 대해서 불평한 적이 있습니다. 단순 반복에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추스를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기에 나에게는 고문과 같은 나날들이 많았습니다. 삿된 탈출이 필요했고 나는 또 절망합니다.

평이함을 이겨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 조각의 마음이 언제까지고 남아 있으리라는 걸 아는 것— 그 조각을 쥐고 갈 수 있을 때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권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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