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8. 08.

중첩된 시간이 극광처럼 흔들리더라도

지난 밤은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악몽에 짓눌려 깨기를 서너번. 몸 상태가 꽤나 좋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침 수업에 가기 위해 방을 나섰습니다. 수업을 듣는데에는 실패했지만.

병원 예약 시간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떠서 동아리방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아니 그러지 말걸. 코딩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버스를 탈 시간을 놓쳐버렸습니다. 결국 택시를 타고 병원에 방문했어요.

점심을 먹지 않은 탓에 밥스버거스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그 문은 굳게 닫혀있었습니다. 학교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버스가 출발하려했고 나는 급히 손을 흔들어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소 흔들리는 버스 탓에 나의 마음도 흔들렸어요. 연구실에 가려고 한 나의 마음은 카페에서 작업하자는 마음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러나 배고픔은 여전했기에 가볍게 토스트를 먹고 티타로 향했습니다.

2024. 05. 07.,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25 2층.

카페에서 작업을 마저 수행했습니다. 기존에 있는 라이브러리에 있는 기능을 다시 구현하는 일을 하는 중이에요. 엉망진창으로 이루어진 코드를 다시 개발하는 일에는 스트레스가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얻어갈 수 있는 게 조금씩 있어서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요. 오늘 나는 grep-ast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사용법 또한 순수하지 못해서 짜증이 났지만.

마하그리드에서 에반게리온과 콜라보한 제품들을 선보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비니가 예쁘길래 사려고 했는데 오픈 시간을 놓쳤어요. 깜박해서. 모두 같은 생각을 했는지 비니는 품절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예쁘다고 생각한 볼캡을 샀어요. 두상이 옆으로 큰 탓에 잘 어울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 볼캡 하나도 없어요. 이런 핑계라도 대면서 결제 창을 나에게 들이밀었습니다.

2024. 05. 07.,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똠얌라멘 특선이 오늘로 마지막일 것 같아서 베라보에 방문했습니다. 잠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모습이 얼굴에 드러났나봐요. 철수 사장님께서 나를 보자마자 너무 피곤해보인다면서 얼른 자라고 말해주셨습니다. 특선 라멘들을 맛보다도 나를 챙겨주시는 사장님들 덕분에 베라보에 자꾸만 방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철수 사장님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잘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라이브러리 분석도 빠른 시일 내로 마무리해야했고 아침 미팅도 준비해야했어요. 이것저것 할 일들을 해치웠을 때에는 밤 12시였습니다.

어젯밤까지 코딩을 열심히 한 탓에 라이브러리 분석 및 재구현을 끝냈다고 미팅에서 보고할 수 있었습니다. 하는 중이라고 보고할 때보다 끝냈다고 보고하는게 더 있어보이잖아요. 이 외에도 그동안 자잘하게 한 일들이 많아서 꽤나 성공적으로 미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동기들에게 긴축 선언을 했습니다. 연휴에 서울을 방문하면서 돈을 생각보다 많이 썼어요. 여름 옷들을 사면서도 돈을 생각보다 많이 썼어요. 당분간 식사는 학식 밖에 없음을 선언했습니다. 이전에는 돈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에 큰 공포를 느꼈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많이 변한 것 같았습니다.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게 서로 함께 지내는데 오히려 더 나은 것 같아요.

연구실 내 책상 위에 컵이 없는 모습을 보고 난 공포에 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컵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컵은 예상대로 정수기 위에 있었습니다. 다만 공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면 티백이 꽂힌 채로 연휴 내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겠지요. 컴퓨터공학과 연구실에서 때 아닌 곰팡이 배양 실험을 성공적으로 해냈는데 생명과 테크니션으로 일해야할까봐요.

어제 다시 구현한 라이브러리를 기존에 작성해둔 프레임워크에 붙였습니다. 둘 다 내가 쓴 코드라 그런지 한번만에 잘 붙었어요. 서킷이 매끄럽게 작동했어요. 학식을 먹으면서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옵저빌리티를 높이기 위해 각종 로그들을 추가했습니다. 이전에 로깅을 위해 loguru를 써 보았는데 새로운 시도도 해볼 겸 rich의 로깅 핸들러를 이용해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겉보기에는 좋아보이는데 그 속내는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로그와 함께 실험을 돌려보았고, 꽤나 좋은 데이터를 뽑자마자 교수님께 바로 자랑을 했습니다.

2024. 05. 08.,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2024. 05. 0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수업에 나선 것은 의도된 사항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는대로 방에 돌아가서 꾸밀 작정이었거든요. 오래간만에 화장을 했어요. 오래간만에 점프수트도 입었습니다. 지곡회관 앞에서 베라보 사장님들을 만났습니다. 축제를 구경하려 오셨나봐요. 나를 보자마자 옷 너무 예쁘고 아깝다면서 열심히 놀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나도 놀고 싶어요. 그치만 낮 시간대에는 놀아줄 친구가 없는걸요.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저녁에 베라보에 놀러가겠다고 말하고 사장님들과 헤어졌습니다.

2024. 05. 09.,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18 1층 101호. 2024. 05. 09.,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18 1층 101호.

커들러에 방문했어요. 다른 손님과 떠들고 있던 사장님은 가게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 타겟을 변경했습니다. 친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붙임성이 참 좋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에도 결국 끝이 있을 따름이라. 팀플 코딩도 조금 할 수 있었습니다.

2024. 05. 09.,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약속한대로 베라보에 방문했습니다. 특선이 카이라멘으로 변경되어 있었어요. 굴, 바지락 등의 해산물로 맛을 낸 라멘이었는데 사장님께서 8알 정도를 서비스로 주셔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2024. 05. 0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2024. 05. 0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서 댄동 공연을 봤습니다. 와장이 내 모습이 웃기다고 했어요. 아는 노래 나오면 그루브 타면서 신나하다가 모르는 노래가 나오면 금새 시무룩해지는 모습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2024. 05. 0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2024. 05. 0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마니아 주점에서 술도 마셨어요. 꽤나 많이 마신 편이었지만 매상을 올려주기 위해 굳이 주점에서 이것저것 더 사서 동아리방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뒤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2024. 05. 10.,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2024. 05. 10.,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아침에 눈을 일찍 떴습니다. 술에서 채 다 깨지 않은 채로 엄마와 전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평소에 하지 않을법한 인사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에 같은 팀의 다른 교수님께 DM이 도착해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칭찬을 들었어요. 코딩을 잘 하는 것 같다고요. 예상치 못한 칭찬에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초밥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정초밥을 방문했을 때 경험이 좋지 못했어서 가정초밥을 가고 싶진 않았어요. 하지만 몇 번의 검색을 거친 후에 그럼에도 선택지가 가정초밥 밖에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2팀 정도의 웨이팅을 거쳤고 내가 이걸 기다려서 먹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효자까지 나온 김에 카페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또 티타에 갔어요. 층고가 높고 조용한 카페인 점이 공부를 하기에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공간이 좋은 것과 나의 집중력은 별개의 문제이지요. 도통 코딩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일주일 넘게 밀린 가계부를 정리했어요. 뇌를 빼고 할 수 있는 작업만큼은 할 수 있었습니다. 집중력을 되찾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하고요. 아주 약간 돌아온 집중력으로 팀플에 필요한 코드를 작성했습니다.

오늘은 놀아줄 친구가 없었습니다. 학교 밖 다른 친구는 야근한다고 축제에 놀러오지 못한대요. 침대에 그냥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술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혼자서 주점에 들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편의점에서 몇 병을 사서 동아리방에 갔고 부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24. 05. 10.,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부우와 함께 축제를 구경하러 내려갔습니다. 나는 22학번들이 모여있는 테이블에 합석했어요. 눈치없이. 하지만 외향적인 친구들이 많아서 재밌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후배들이 정말로 내 리포지토리들을 보면서 과제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체스도 만났습니다. 지곡회관에서 맥주를 사서 체스와 대화를 나눴어요. 일요일 점심에 약속을 잡았다는 사실을 토요일 밤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2024. 05. 11.,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점심을 먹고 피부과에 방문할 계획이 있었지만 예상보다 준비가 너무 늦어진 탓에 점심을 나중에 먹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으로 턱 보톡스를 맞고 3개월이 지나서 한 차례 더 맞을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에는 평일 점심이라 사람이 없었나봐요. 오늘은 사람이 꽤나 많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내 깨물근을 눌러보시더니 이제는 6개월 주기로 맞으러 오라고 하십니다. 꽈득 소리를 내며 주사가 주입되었고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4. 05. 11., 경북 포항시 남구 중흥로 122. 2024. 05. 11., 경북 포항시 남구 중흥로 122.

스타벅스에서 코딩을 했습니다. 꽤나 좋은 날씨에 바다라도 놀러갈까 싶었으나 나의 상황이 허락해줄리가 없었죠. 수요일까지 실험 데이터를 뽑아야했고 실험을 위해 준비된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나는 정신없이 실험을 준비했고 그 사이에 받은 두 장의 오로라 사진이 그나마 나의 마음을 위안해주었습니다.

다이소에 들러서 콜렉트북과 포토카드 앨범을 샀습니다. 며칠 전에 추억 상자를 정리하면서 덕질 박스를 새로 장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켓들과 포토 카드들이 상자 안에서 굴러다니고 있었기에 정리가 필요한 시점임을 알 수 있었어요.

2024. 05. 11.,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그리고 나는 절망했습니다. 콜렉트북에는 티켓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어요. 아니 정확히는 단 0.1밀리미터 차이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나는 티켓들을 겨우 집어넣었고 몇몇은 약간씩 구부러지며 희생되었습니다.

나에게는 23장의 티켓이 있었어요.

그러면 그 한 줌의 시간을

2024. 05. 11., not my own.

2024. 05. 11., not my own.

플레어가 폭발했습니다. 덕분에 나는 몇 장의 극광 사진을 보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중첩된 시간이 너무나도 짧음에도— 대화의 가능성이 시각화된 존재 같았습니다.

극광처럼 흔들리는 중첩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2024. 05. 12., 경북 포항시 남구.


권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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